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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 모처럼의 삼일절 연휴를 맞아 서울로 가족 나들이를 계획했다. 하지만 연휴 내내 비와 눈이 예보되면서 위약금을 물고 예약을 취소했다. "어디가 좋을까?" 고민하고 둘째가 거제 '바람의 언덕'을 가보자 제안했다. 바람을 맞기에 이만한 곳도 없지, 싶었다.
3월 2일, 느직하니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거제로 출발했다. 하늘은 우중충하지만 구름 사이로 드문드문 햇살도 보여줬다. 괜스레 예약을 취소했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통영-대전고속도로 끝자락인 통영나들목을 나와 견내량을 가로지른 거제대교를 건넜다. 거제에 들어섰다. 하늘은 회색빛을 더했다. 거제를 가로질러 남으로 남으로 내달렸다.

거제 영세민전세자금대출절차 학동해수욕장 이정표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꼬불꼬불 산자락을 내려가면서 거제 바다가 당당하게 우리를 맞이한다. 목적지로 곧장 가기보다는 학이 날개를 펼친 모습이라는 학동해수욕장에 먼저 들렀다. 근처 공영주차장에는 우리처럼 궂은 날씨에도 찾은 이들의 차들로 가득했다.




일반음식점





▲  거제 학동해수욕장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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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동해수욕장 바닷가는 동글동글한 몽돌로 자갈밭을 이루었다. 그래서 일명 몽돌해수욕장으로 불린다. 몽돌이 바람 장단에 제 몸을 부딪쳐 내는 "쏴르르~" 소리가 정겹다. 넓적한 몽돌을 구해 물수제비를 하는 이들이 많다. 바다 수면 위를 부딪치며 더 멀리 나아가는 돌들의 행렬이 경쾌하다.


오릭스저축은행 몽돌을 걸어서면서 몽돌이 온몸으로 내는 소리를 들다가 몽돌을 상징하는 캐릭터 '몽돌'과 '몽순'이 앞에서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루나파크
▲  거제 학동해수욕장


ⓒ 김종신




맞은편 이순신 동상은 서울 광화문광장의 중국풍 갑옷을 입은 장군이 아니다. 두정갑(頭釘甲)을 입으셨다. 두정갑은 옷 안에 갑옷미늘을 부착하는데 겉에서는 갑옷미늘이 보이지 않고 갑옷미늘을 고정하는 못 머리 (頭釘)만 보여 두정갑이라 불린다.


이순신 장군을 뒤로하고 목적지인 '바람의 언덕'으로 향했다. 굽은 해안 길을 따라 바다가 자맥질하듯 다가온다. '바람의 언덕' 근처에 차를 세웠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몸을 웅크릴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묵을 때를 날려버릴 듯 부는 바람이 고맙다.










▲  거제 바람의 언덕 입구


ⓒ 김종신




언덕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있는 알록달록 형상의 화장실에서 묵은 찌꺼기를 덜어냈다. 비웠으니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품다'라는 브론즈 작품이 우리를 푸른빛으로 감싸안는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형상의 '자연의 수호자'가 미래의 희망을 품은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동행을 다시 시작하라는 듯 반긴다.

맞은 편에는 가족의 화목과 친구들의 우정, 연인들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자물쇠들이 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알알이 매달려 있다.










▲  거제 바람의 언덕


ⓒ 김종신




바다로 난 해안 덱길을 따라 바다를 걷는 이들도 있지만 우리는 경사진 길 따라 놓인 계단을 따라 언덕으로 향했다.

언덕에 이르자 "솨아" 하는 바람의 목소리가 우리의 뺨을 어루만지며 인사를 들을 수 있었다. 비록 하늘은 잿빛이지만 바람의 정다운 소리가 좋다.

바람의 응원 따라 흔들흔들, 바다 표면의 잔잔한 물결이 곱다. 언덕 위 갈대들이 바람의 장단에 덩달아 춤을 춘다.










▲  거제 바람의 언덕


ⓒ 김종신




바람의 언덕답게 약간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바람 소리 상쾌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바람의 속도와 달리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듯 풍경이 아늑하다. 저만치 동백숲이 마치 자신을 봐달라는 듯 아우성친다. 동백꽃이 한창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그 곁으로 카페가 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 6500원, 핫도그 6000원. 결코 싼 가격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그림 같은 풍경 덕분에 값어치를 한다. 1층에서 주문한 음료와 음식을 가지고 2층으로 올라가자 더욱 또렷한 바다 풍경이 우리를 맞이한다. 우리가 지나온 몽돌해수욕장이 저만치에서 알은 체한다.










▲  거제 바람의 언덕 카페에서 멍때리듯 창 너머 풍광을 바라본다. 너머의 바람은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붓이다.


ⓒ 김종신




육지라는 일상에서 잠시 뚝 떨어져 바다로 향한 언덕에서 바라보는 바다 너머는 도시의 소음이 가라앉았다. 멍 때리듯 창 너머 풍광을 바라본다. 너머의 바람은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붓이다. 자연이 빚은 수채화를 찬찬히 구경한다. 격려를 얻고 위로는 받는다. 지금 여기, 일상으로 돌아갈 삶의 에너지를 채운다.